섣달 그믐날

[섣달 그믐날]

새해 와서 앉으라고​
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
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
당신이라 부르련다

제야의 고갯마루에서
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
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
나는 바라봐야겠어

세상은
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
당신은 눈 침침, 귀도 멍멍하니
나와 잘 어울리는
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

마지막이란
심오한 사상이다

누구라도 그의 생의
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
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

조금 남은 시간을
시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
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
가장 정직한 청빈이다

하여 나는
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.

–김남조–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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